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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처음 오르다 주저앉아 울었어요…어찌 이리 아름다울까`

최초작성 [JMnet 07.22 13:33] | 마지막 업데이트 [JMnet 10.07 11:19]이 문서는 총 1,186번 읽혔습니다.

이만훈 전문기자의 사람 그리고 세상
60번째 백두산 오르는 트레킹 가이드 윤치술씨


출처:중앙일보,2008.07.06
출처:중앙일보,2008.07.06


벌써 소서(小暑)다. 한 여름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온 천지가 꽃 대궐이던 봄날이 어느새 후딱 가버리고 시인 이육사가 노래한대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평범한 땅의 얘기다. 우리의 영산 백두산은 이제 봄이다. 천지주변에 겨우내 쌓였던 눈이 6월 중순부터 녹기 시작해 7월로 접어들면 해발 1800m 이상 백두산 고산지대엔 온갖 야생화가 피어나 그야말로 꽃 바다를 이룬다. 붓꽃ㆍ원추리꽃은 물론이고 두메양귀비ㆍ노랑만병초ㆍ두메자운ㆍ하늘매발톱ㆍ산꿩의 다리ㆍ달구지풀ㆍ화살곰취ㆍ씨범꼬리ㆍ자주방망이ㆍ 털쥐손이ㆍ금매화ㆍ환호초ㆍ왕개불알꽃ㆍ구름국화ㆍ개감채ㆍ미나리아재비 등등 이름도 정겨운 것이 종류만 180여 가지된다. 해서 한번이라도 이 장관을 본 사람은 평생토록 잊지 못하고 황홀경에 빠져 산다. 백두산 전문 여행사 ‘백두산닷컴(go2744.com)’을 운영하는 윤치술(50)씨도 그런 사람이다. 아니, 그는 백두산에 홀딱 빠진 마니아 중에서도 왕(王)마니아이다. 1999년 야생화 탐사팀에 끼어 우연히 백두산 서쪽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엉엉 운 그다. 그 뒤 하산과 더불어 아예 그 길(이른바 서파코스)을 여행상품으로 만들어 백두산 산행을 직업으로 삼았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7월 시작되는 산행을 앞두고 6월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안달이 난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 같아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오는 9일 40명이 함께 하는 올 마수거리 산행을 앞두고 이미 마음은 온통 백두산에 가 있다.


“이번에 가면 딱 예순 번째예요. 백두산은 갈 때마다 매번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영산이에요. 그래서 늘 새로운 느낌이죠. 이번엔 환갑(還甲)산행이니만치 뭔가 훨씬 좋은 산행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흥분이 됩니다.”


윤 씨는 자칭 ‘백두산 트레킹의 전도사’이다. 백두산이 너무 좋아 자신만 즐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만나는 사람마다 백두산 산행을 강권하다시피 한다. 처음엔 장삿속이려니 여기던 사람도 그의 백두산 찬가를 듣노라면 잠깐사이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의 꾐에 빠져(?) 그와 함께 백두산을 다녀온 사람이 200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000여명이나 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 중에는 누구라면 다 알만한 고위인사들과 경제인들도 여럿 된다.


그와 함께 하는 산행은 트레킹(trekking)이다. 트레킹은 남아프리카 원주민이 소달구지를 타고 산길을 이동한 데서 유래된 말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등반(climbing)과 달리 능선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걷는 산행이다. 그래서 웬만한 체력의 소유자라면 가이드의 지도를 받아가며 얼마든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백두산을 다녀오는 방법은 두 가지, 북파코스와 서파코스를 통해서다. 북파코스는 장백폭포와 나란히 있는 580여 계단을 오르거나 천문대가 있는 천문봉(2670m) 턱밑까지 차를 타고 가 5분여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이르는 문자 그대로 ‘관광’코스다. 이에 반해 서파코스는 백두산 서쪽에 있는 5호 경계비→청석봉(2662m)→백운봉(2691m)→녹명봉→달문→장백폭포로 이어지는 15㎞를 걸어야 하는 도보코스로 99년 윤 씨가 개발하기 전까지는 약초꾼들만 다닐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부분 북파코스를 이용한 관광이 고작이었다.


“처음 서파코스를 답사하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감동적이었어요. 11시간가량 걸리는 긴 코스였지만 왼쪽엔 마치 신선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꽃밭이 널브러졌고, 오른쪽엔 천지가 신비한 자태를 뽐내는데…. 어디 이것뿐입니까.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백두산 자락의 수해(樹海)라니…, 단언하건대 지구상 어느 트레킹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꼽히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뉴질랜드의 밀포드, 캐나다의 빅토리아섬보다 나으면 나았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출처:중앙일보,2008.07.06
출처:중앙일보,2008.07.06


윤 씨가 자신의 감동을 살려 서파코스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본격적으로 사람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 첫 답사 후 곧바로 시작하려 했지만 당시만 해도 서파지역만 출입이 허용되는 바람에 2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은 고작 15명뿐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항공료 등 1인당 참가비가 180만원으로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사정이 달라졌다. 다녀온 사람들의 감동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지원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9월 초면 눈이 내리는 통에 7~8월 동안 끽해야 여덟 차례 다녀오는데 2005년의 경우 사람들이 몰려 어쩔 수 없이 1000명으로 끊었을 정도다.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묘한 존재입니다. 어려서부터 애국가를 통해 각인돼서 그런지 백두산하면 왠지 신비스러울 것 같고, 왠지 안 가보면 안 될 것 같은, 외경과 그리움의 대상인 것 같아요. 백두산 산행을 단순히 돈벌이로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윤 씨는 자신이 이끄는 백두산 트레킹의 인기비결을 이같이 설명한다. 하지만 이건 겸손이다. 실은 그의 친절하고도 노련한 가이드 솜씨 때문이다. 그는 일행 개개인의 컨디션을 파악해 대열의 앞뒤를 오가며 맞춤가이드를 한다. 그래서 그와 한번 산행을 함께 한 사람들은 대번에 그의 열렬한 팬이 되고 만다. 2002년 그와 함께 백두산을 다녀온 어느 노교수의 산행기는 그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백운봉을 넘기 전에 천지물이 스며 흐르는 계곡을 만났다. 모두들 수통에 식수를 채우고 뼈가 저려오는 찬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냈다. 신발 끈을 풀고 양말을 벗는 것도 귀찮아서 그대로 쉬려하니 윤대장이 자구 벗으라고 권한다. 마지못해 벗고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었는 데 30초도 견딜 수 없어 일어나려 하니 윤대장이 달려들어 왼발 오른발을 차례로 씻어주고 주물러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할수록 고맙고 황공할 뿐이다.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어주었다는 기록 외에 대장이 연장자라고 발을 씻어주었다는 기록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또 다른 산행기 한 대목. 10여 년 전 폐 절제수술을 받고 체중 94㎏인 사람의 2005년 기록이다.


‘나로 인해 지체된다면 여럿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결국 아쉽지만 종주는 포기하려고 했는데(…)이후 윤 대장은 내 뒤에서 걸음 속도를 늦추라고 주문하며 보행법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실제 실습을 보이기도 한다. 윤 대장은 나에게 구세주 같은 가이드로 다가왔다.’


윤 씨와 함께 하는 산행은 늘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그의 배낭엔 언제나 하모니카와 우크렐레(4줄짜리 하와이민속악기로 작은 기타처럼 생겼다)가 들어있다. 쉬는 틈에 일행을 위해 연주하기 위해서다. 「로키에 봄이 오면(Spring time in the Rocky)」「홍하의 골짜기」「오빠생각」「꽃밭에서」등 레퍼터리도 30여 가지된다. 천지에서「홍하의 골짜기」를, 야생화가 흐드러진 고원에서 「오빠생각」을 부른다고 생각해보라! 자, 이 정도면 그에게 ‘뻑’갈만하지 않나?


윤 씨의 별명은 원래 ‘까칠이’였다. 산행을 하면서 가르쳐준대로 하지않고 ‘산행상식’을 어기는 일행들에게 가차없이 잔소리를 해대기 때문이었다. 배낭을 바짝 올려지라거나 보폭을 줄이라, 지그재그로 올라가라, 속도를 낮추라, 앉아서 쉬지말고 서서 쉬라 등등. 그래서 때론 백두산 호랑이란 뜻에서‘백호’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백호’는 그대로되 의미가 달라졌다. 엄하면서도 즐겁게 해준다고 해서 누군가 호랑이 대신 ‘호랑말코’로 풀이한 것이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윤 씨는 등산이란 말을 싫어한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뉘앙스가 풍기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입산이란 말을 즐겨 쓴다. 산의 품에 들어가 산과 함께 할 때라야 진정 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해치우려는 듯이 미친 사람처럼 산을 오르는 이들을 보면 딱해요. 오도된 산문화 탓이죠. 그런 사람들은 산을 오를 자격이 없어요. 산 너머 흘러가는 한조각 구름에도 감동하고 한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자격이 있어요.”


그래서 그는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나는 그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산을 오르려 한다”고 한 말을 좋아한다. 산사나이로서 자신의 좌우명을 ‘배우는 산, 느끼는 산’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그는 산행을 하면서 시를 쓴다. 직장에 다닐 때 시공모에서 장원을 차지한 적도 있을 정도의 감성과 실력을 갖췄다.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지었다는 「下山」의 한 대목을 보자.‘아연, 침묵하든 봉우리에/수수로이 던져두고 가는/미완의 가슴/完美한 너의 자락을/어둠속에 내려서는/미완의 가슴,/가슴일 뿐이다’)


출처:중앙일보,2008.07.06
출처:중앙일보,2008.07.06


그의 이 같은 ‘산 철학’은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7남매 중 장남인 그는 아버지가 사업을 한 덕에 귀하게 자랐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당시 유행하던 통기타문화에 빠져 공부하고 담을 쌓기 시작해 부모가 이를 못하게 하자 연주대신 산에 빠져들었다. 직장에 다닐 때도 무박산행하고 출근하길 밥 먹듯이 할 정도였다. 국내에 있는 산이란 산은 죄다 훑고 다녔다. IMF 직후엔 3년 동안 매주 버스 15~20대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산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산행문화가 너무 거칠다는 걸 깨달았고, 이를 순화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해냈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1m에 1원씩’ 모금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등산보다는 트레킹을 택한 것도, 지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산상연주’도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트레킹 전문가 중 하나다. 산이 두렵고 힘들다는 사람들도 그에게 한 시간만 교육받으면 “산행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다. 그에겐 비법 아닌 비법이 있다. 바로 ‘100m 론(論)’이다. 100m를 5초엔 못 달리지만 50초면 달릴 수 있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무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에 맞춰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5월초 이 방법으로 67세 여성이 포함된 평균나이 54세의 주부 33명을 2박3일만에 한명의 낙오도 없이 지리산 40㎞를 종주시켰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가는 인구가 1000만 명이 될 정도로 산행인구는 늘었는데 아직도 배낭하나 제대로 메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산행에 맞는 걷는 법, 먹는 법, 입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게 국민건강을 위해 시급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를 위해 전문가 양성과 교육시스팀 구축 등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가이드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늘 몇 가지 충고를 한다. 첫째, 산에서는 경사를 대비해 보폭을 줄여라. 평지에서 보다 반 정도의 보폭으로 재게 걷는 게 에너지를 줄이는 첩경이다. 둘째, 경사를 오를 땐 속도를 줄여라. 자동차도 언덕을 오를 때 기어변속을 하지 않나? 평지에서 시간당 4㎞를 가는 사람이라면 시간당 2㎞가 적당하다. 셋째,에너지를 제때 공급하라. 산행을 하다 힘들면 고작 물이나 김밥 등을 먹는데 이건 별로 도움이 안된다. 자동차가 섰으면 연료를 넣어야 하는데 물을 넣으면 되나? 에너지로 즉시 쓸 수있는 당분의 섭취가 필수다 등등. 그는 말한다.“행복한 산행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가이드가 단순한 네이비게이션 노릇만 해선 곤란합니다. 산행에 관한 광범위한 내용을 숙지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일행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강력한 신뢰위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가이드로서 십계명(十誡命)까지 정해놓고 산행을 이끈다는 그에게서 진정한 가이드상(像)을 보는 것 같다.




이만훈 전문기자

2008.07.0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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