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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에 한양이 있었네

최초작성 [JMnet 09.24 13:18] | 마지막 업데이트 [JMnet 09.24 16:26]이 문서는 총 1,071번 읽혔습니다.
서울 성곽 인왕산 코스를 걷고 있는 중년 부부의 발걸음이 다정스럽다.  출처:중앙일보
서울 성곽 인왕산 코스를 걷고 있는 중년 부부의 발걸음이 다정스럽다. 출처:중앙일보


남산·낙산·인왕산·북악산은 서울을 감싸 안은 네 개의 산이다. 이 내사산(內四山)과 능선을 따라 성벽을 세우면 도성 안팎을 경계하고 외적을 막기에 쉬우리라는 것이 태조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길이 18km의 서울성곽은 역사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평지의 성곽은 많이 사라졌다.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현재 살아 있는 거리는 불과 10km 남짓, 그마저도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 있다. 그래도 끊어진 부분을 돌아가며 성곽을 따라가는 것은 여느 길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이 길은 단순한 산책길이 아니라 ‘역사를 걷는’ 길이다.


글=정유진·최경애 객원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정우


남산 코스 ▶ 여유 그리고 고즈넉함


지하철 동대입구 역에서 내려 장충체육관을 지난다. 남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들어서면 신라호텔과 주택가 사이로 성곽과 성곽 산책로가 보인다. 도심 한가운데를 거니는 게 분명한데도 번잡스러움은 어디 가고 고즈넉한 기분이 든다.


걷다 보면 성벽 모양이 구간별로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쌓아 올린 것은 태조 때 것, 정방형의 돌을 수직으로 반듯하게 쌓아 올린 것은 숙종 때 성곽이다. 시대별로 다른 축성기술을 확인하며 걷는 것도 제법 흥미롭다.


무시로 길이 끊어졌다 이어지고, 철책으로 가로막힌 곳이 나타나므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게 좋다. 남산 팔각정까지 능선으로 뻗은 코스가 딱 그렇다. 철책 때문에 접근할 수 없다. 우회하여 남산 정상까지 오르면 그제야 다시 성곽길을 걸을 수 있다. 정상에 복원된 다섯 개의 남산 봉수대까지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여기서 다시 지금은 사라진 남산식물원 쪽으로 향하면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성곽길을 따라 남산을 내려올 수 있다.


낙산 코스 ▶ 단정하게 조성된 공원·전시관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이대부속병원 쪽으로 향하면 ‘창신성곽길’로 안내하는 낙산공원 이정표를 볼 수 있다. 10년 전부터 복원사업이 추진돼 창신성곽길을 거쳐 낙산공원에 이르는 산책로는 깔끔하다. 성벽 중간중간 남아 있는 암문을 통해 충신동 풍경도 엿볼 수 있다. 성곽을 경계로 안팎의 지형, 경사가 판이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성곽길을 따라 오르며 한양의 옛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이 코스의 묘미다.


여유있게 걸어도 약 30분이면 낙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발아래로는 서울의 전경이, 눈높이로는 북악산·인왕산·남산이 시야를 채운다. 단정하게 조성된 공원과 전시관, 전망광장 등을 둘러보다 보면 서울을 품에 안은 듯 뿌듯해진다.


하지만 이곳 성곽길 역시 끊겨 있기는 마찬가지. 때문에 일단 대학로 쪽으로 내려왔다가 성북동 서울과학고 뒤편으로 다시 올라야 한다. 창신성곽길에 비해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으므로 쉬엄쉬엄 오르는 편이 낫다. 성곽 바깥쪽 성북동 풍경에 잠깐씩 마음을 주어도 좋다. 빌딩 숲에 가려진 서울살이의 또 다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도 숙정문까지 이르지 못한 채 산책로는 또 끊어진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성북동 방면으로 길을 잡아 내려오면 된다.

출처:중앙일보
출처:중앙일보

인왕산 코스 ▶ 서울 시내가 한눈에


루트가 둘이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내려 사직공원을 지나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독립문역에서 내려 현대아파트 쪽으로 길을 잡아도 된다. 남산과 낙산이 산책로 코스로 적당하다면 인왕산과 북악산의 성곽길은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야 한다. 해발 330m 남짓의 높이지만 만만한 경사는 아니다. 성곽길을 따라 오르는 계단에는 흰색 페인트로 순찰로를 표시했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일부 구간에는 초소가 세워져 있고 출입을 통제하는 구역도 있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탓에 인왕산은 ‘이름난 바위’가 많다. 부처바위는 양반다리를 한 불상을 닮았다. 이목구비도 진짜 사람의 그것처럼 뚜렷하다. 그 외 달팽이바위, 범바위, 코끼리바위 등도 유명하다. 성곽길을 따라 인왕산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과 북악산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다는 점은 인왕산 정상만이 주는 특별한 선물. 내친김에 인왕 스카이웨이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하루 안에 인왕산과 북악산 모두를 발아래 놓게 된다.


북악산 코스 ▶ 악마루 ~숙정문 약 두 시간


북악산은 한때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산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올해 봄 40년 만에 드디어 북악산 서울 성곽이 개방됐기 때문이다. 북악산이 열리던 날 황지우는 “그대 백악이여, /금지된 빗금을 넘어 그대가 /사람 만나러 내려올 때 /솟아난 것은 한낱 돌덩어리가 아닌 /우리네 마음의 넉넉한 포물선이었구나.”(‘풍경 뻬레스트로이카’ 중)라고 썼다. 이 시는 창의문과 말바위 쉼터에도 적혀 있다.


북악산 성곽길은 창의문에서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시작된다. 청운대와 말바위 쪽 진입로와 달리 이쪽 길은 유달리 가파른 탓에 등반이 쉽지는 않다. 성곽로는 창의문~숙정문, 창의문~홍련사, 창의문~숙정문으로 이르는 길 이렇게 3개 코스로 나뉜다.


악마루에서 촛대바위를 지나 숙정문에 이르기까지는 약 1시간30분~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계단 곁에 일정한 간격으로 초소가 세워져 있고 군사보호구역인 탓에 사진촬영도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북악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그저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며 마음에 새기는 수밖에 없다.


산을 오르지 않고도 북악산 성곽의 운치를 누릴 수 있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부암동사무소에서 환기미술관 쪽으로 난 북악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지로 소문나 부쩍 인기가 많아진 산책로다. 낡고 허름한 주택가 담벼락, 철물점·세탁소 등 서울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07.12.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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